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섭(李基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102697
  • 전몰일자 : 19500911

공훈사항

이기섭 일병은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2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현지 입대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진지를 지켜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9월 1일 제3사단은 일제히 반격을 했고, 북한군 제5사단도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제3사단의 주 저항선이 돌파됨에 따라 사단은 일시적으로 철수했다가 포항 방어에 중요한 128고지, 105고지, 93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역습을 감행했다. 이때 제23연대 장병들은 93고지를 놓고 16회의 공방전을 거듭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파상적인 공격에 소티재 고개 일대로 다시 철수하여, 자명동-111고지-96고지-소티재-두호동 선에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연대는 두호동-환호동 선으로 철수하여 이곳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일련의 공방전에서 연대 장병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적과 싸웠다. 이 일병은 신병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9월 11일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4-ㄱ-07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