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선(이기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940
  • 전몰일자 : 19510201

공훈사항

이기선 일병은 서울시 중구 남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의 조교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그 후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다가,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이 일병이 제1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훈련소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대구 지역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활동이 심했던 지역이었다.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한 후에는 미처 도주하지 못한 패잔병들이 대구 인근의 팔공산이나 보현산 등을 근거지로 하여 이들 빨치산들과 연계하여 후방교란활동을 계속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선까지 남하하자 이들 게릴라들의 습격·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대구에는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1951년 2월 1일 팔공산에 적 게릴라들이 나타났고,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이 적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적을 추격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5-ㄱ-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