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李璣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7390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이기석 일병은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 중순경에 입대 후 제8사단에 배치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게 기습남침을 당했다. 이 일병과 제8사단은 38도선에서 경계 작전에 임하던 중이었기에 곧바로 방어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제8사단 정면으로는 북한군 제1경비여단 및 제5사단 제10연대가 진격하고 있었고 정동진 방면으로는 북한군 제945육전대와 제766부대가 침투하여, 제8사단에 대한 포위 및 제21연대의 증원 차단을 시도하였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이를 격퇴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은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그 일대에 유격대를 배치해 변수에 대비하고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이어서 제8사단은 의성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의성 북쪽 주 저항선인 향로봉과 토곡동, 보현산 일대에서 야간전투와 백병전을 치루는 치열한 방어 전투로 피아 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이 전투로 북한군의 동부전선의 진출이 지연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을 청송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보현산과 기계지역 정면에 새로운 주 저항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을 11일간 지연시켰다.
전력을 보충한 제8사단은 1950년 9월 20일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적 1개 연대를 격파 후 계속해서 북진했다. 또한 포위된 북한군을 완전 섬멸하고자 시급히 병력을 이동시켜 일부 병력으로 전투를 펼친 결과 1950년 10월 3일 서울, 10월 8일에 연천 남방에 도달해 적 1개 대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1950년 10월 11일 이 일병은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던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ㄱ-01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