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李基奭)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1508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기석 중위는 서울시 서대문구 정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이 중위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예비역 포병 중위였으나, 1950년 9월 15일 재소집에 즉각 응하여 제7사단 제5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9월 공세 때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쳤다. 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조국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그 공로로 대통령 부대표창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사단은 김화-평강을 거쳐 17일 곡산에 도달하여 잔적소탕작전을 했다. 20일 평양이 탈환되자 사단은 29일까지 평양과 그 북방 일대의 잔적소탕 임무를 수행했다.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사단은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11월 3일 사단은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사단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사단이 비호산을 확보함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1월 14일 사단은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사단은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사단 지휘소가 습격당해 지휘통제능력을 상실한 채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중위는 포반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화력 지원에 앞장서다 적 포격으로 11월 2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7판-5면-2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ㄹ-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