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李起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264
  • 전몰일자 : 19510506

공훈사항

이기석 일병은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여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9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으며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했다. 제36연대는 후방지역작전을 11월 22일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가평지역 상천역 부근으로 이동하였으며, 11월 30일에 제27연대와 함께 가평을 공격하여 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가평 북쪽의 지암리와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사단은 12월 5일 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후방을 차단했다. 사단은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가평-횡성-여주-영주 일대로 철수하였으며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이후 사단은 다시 전방지역에 투입되어 2월 5일 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하여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위한 대규모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으며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 주천리 일대에 새로운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횡성 일대의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막아 내면서 4월 17일에 인제를 점령하고 4월 19일에는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사단은 부대정비를 마친 후 5월 7일에 한석산 좌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공격하여 논리 북쪽의 매봉-상수내리를 잇는 선의 진지를 점령했다. 이기석 일병은 캔자스선을 점령하고 재편성 중 5월 6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5판-3면-1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ㅇ-083)에 이름을 새겨,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