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이기석)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16

공훈사항

이기석 일병은 1930년 11월 27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망미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유엔군이 위기에 처했던 1951년 2월 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에 배치되었다가 육군의 부대배치조정에 의해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었던 5월 말경에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38도선을 향해 반격작전을 실시 중에 있었다. 사단의 반격작전은 6월 중순까지 진행되어 38도선을 지나 육단리-적근산(1073고지)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 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7월과 8월에 휴전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해 부대별로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적에게 최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제2사단도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2일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8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사단은 고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9월 1일부터 3일까지 공격하여 치열한 공방전 끝에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 들었고, 이기석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정찰활동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9월 16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고 격멸했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1950-09-16은 제32연대가 아직 창설되지 않았음. 이에 전사 연도를 1951년으로 조정하였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8면-0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ㅅ-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