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李起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669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기석 일병은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북한군의 도발이 빈번하던 1950년 1월 중순,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제7사단에 입대하여 기본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9연대로 배치되었다.
제9연대는 포천 북방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제2대대가 38도선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연대 본부와 제1, 제3대대는 포천 남쪽 금오리 일대에 주둔하며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북한군 제3,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40분에 기습적인 공격을 했을 때, 이기석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금오리 일대에서 전술훈련을 하다가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주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북한군은 순식간에 경계진지를 무너뜨리고 11시경에 보전협동공격으로 포천을 점령하자, 장병들은 이날 오후 2시경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했다.
이기석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연대와 통신마저 두절된 상황에서 중대 및 소대별로 분산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받고 오후 4시경에 태능으로 집결했다. 이어 육사교장 지휘 하에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하여 퇴계원 방향을 방어하다가 28일 아침 한강교가 폭파될 때 망우리고개-용마산-광나루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제9연대가 해체될 때, 그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제1연대 장병들은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진천-청주 축선에서 28일까지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국군 제8사단의 안동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긴급히 안동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적 제12사단의 진출을 저지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후퇴했다. 이후 북한군 제12사단이 8월 9일 기계-안강 지역을 점령하자, 제1연대는 12일에 안강 지역으로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히 저항했다. 이 부근에 145고지와 221고지, 그리고 호명산은 경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피아간에 중요한 지형이라 8월 한 달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계속 벌어졌다. 이곳에서 9월 1일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날 전투에서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2면-0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ㅎ-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