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석(李基石)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이기석 경사는 1918년 11월 5일 전남 해남군 옥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8년 11월 16일 경찰에 입문하였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강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영암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총사령부는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로 돌입하라고 명령했고, 강진경찰서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남진했다. 이러한 전황 속에서 이 경사는 동료 경찰들과 함께 군 주요보급로 경비, 피난민의 정리 및 구호조치, 오열 색출 등의 후방지역작전 수행에 진력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15명씩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고, 이 경사와 강진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 이리-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23일 장성·광주를,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한 후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24일 남원을 점령한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 광산 인근 경찰과 각지에서 물러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그중 이 경사가 소속된 부대를 순천 서북방 학구로 출동시켜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반격으로 전환했고, 미 제9군단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전주(9.27), 남원(9.28), 군산·강경(9.30)을 차례로 탈환했다.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 패잔병들은 지리산 일대의 산악지대로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전남경찰은 게릴라 소탕작전에 돌입했고, 국군 제11사단(1950.10.14.-1951.4.6.)에 배속되어 공비세력을 와해하는데 기여했다. 이 경사는 1950년 12월 31일 영암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석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ㅋ-01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