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상(이기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10159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기상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1949년 8월경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밀양, 양산, 울산 일대에 침투한 북한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다. 7월 1일 연대는 울진을 탈환했으나, 북한군 제766부대의 압도적인 공격에 밀려 지연전을 계속했다. 이후 연대는 8월 중순까지 영해, 영덕, 장사동 일대에서 적과 혈전을 계속했다. 연대는 구룡포 일대에서 재정비 후 8월 20일부터 전투에 투입되어 포항,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경이적인 속도로 진격하여 9월 30일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 시가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경계와 잔적소탕작전을 25일까지 실시했다. 연대는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다가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1일 연대는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전방에는 북한군 제2사단이 투입되었다. 적의 집중공격에 진지가 돌파당하자 연대는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1년 1월 1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3-ㅇ-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