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상(李基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501173
  • 전몰일자 :

공훈사항

이기상 하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1946년 12월 15일 제5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했다. 이 하사는 1948년 용산에 있는 제2포병훈련학교에 입대하여 포병 주특기 교육을 받고, 동년 6월 20일 창설된 육군포병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1949년 10월 15일 육군포병연대가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자, 조교로서 보직되어 확장되는 포병부대원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포병 육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병학교 포병대대는 의정부와 창동 전선에 투입되어 적 전차를 직접 조준사격으로 파괴하는 전과를 획득하기도 했으나, 전방 사단들의 철수와 함께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재정비를 했다. 초기 전투에서 많은 부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자 육군본부는 1950년 7월 5일 사단을 재편했다. 이때 포병도 기존의 제1·3·5·6·7포병대대를 해체하여 제1포병단을 창설하고, 예하에 제10·11·16·17·18·50포병대대를 창설했다. 이때 이 하사는 제11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제11포병대대는 7월 30일부터 동해안 축선의 제3사단에 지원되었다.
제3사단은 7월 24일 서울 지역에 파견되었던 제22연대가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사단은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이에 힘입어 사단은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했다. 하지만 사단은 8월 6일 적의 야습을 받아 영덕을 다시 탈취당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 병력이 부대 간격을 이용, 침투하여 포항을 점령함에 따라 강구에 있던 사단은 후방이 차단당하면서 고립되었다. 북한군 제5사단은 사단을 강력히 압박했고, 사단은 강구 남단에서 장사동 남쪽 11km 지점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교두보를 구축하여 급편방어 편성을 하고 혈투를 벌이며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 하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전투에 앞장서 왔고, 이 전투에서도 포반원을 독려하며 쉴 새 없이 적진에 포격을 가하다 적의 포격으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2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4면-0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ㅎ-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