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삼(李基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2900823
  • 전몰일자 : 19510119

공훈사항

이기삼 일등중사는 황해도 연백군 용통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1949년 1월 중순경 대구에 위치한 제18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복무하다가 5월 중순경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제20연대는 5월 12일부로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한 제5사단에 예속되어 6·25전쟁 초기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피해를 입고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 이기삼 일등중사는 제1사단 소속으로 낙동강방어선 전투에 참가하여 오로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육본 일반명령 제86호에 의거 10월 8일 보병 제5사단이 재창설될 때 제35연대는 사단 예하부대로 편성되었으며, 그는 제35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이기삼 일등중사가 제5사단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작전이 한참 진행 중에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아군의 북진으로 10월 13일부터 영남지구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각 연대별로 책임지역을 할당하여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제35연대는 진주에 전술지휘소를 점령하고 지리산 동부지역의 적 패잔병 소탕을 위하여 공비토벌작전을 10월 15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빨치산들은 수시로 산간지역 마을을 습격하여 양민들을 살해하고 보급품을 조달했다. 이에 제35연대는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런 국군의 후방지역작전으로 수복지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사단은 12월 5일 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 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가 되었다. 이기삼 일등중사는 부대원들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후방 침투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이기삼 일등중사는 1월 19일 제천 부근 방어진지에서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적과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삼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7499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ㅂ-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