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삼(李基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32238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이기삼 이병은 1925년 9월 15일에 경상남도 통영군 거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본군사훈련을 수료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8군 사령부에 배치되었다가 9월 20일에 미 제24사단으로 소속이 전환되었다.
이기삼 이병이 전입했을 때, 미 제24사단은 김천-영동 방향으로 적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얼마 후 9월 28일에 대전을 탈환했다. 이후 북진작전 간에는 미 제1군단의 조공으로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건너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여 18일에 재령을 탈환하고,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함으로써 황해도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한편 이날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은 평양을 탈환했다.
이기삼 이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10월 20일에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4일에는 청천강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10월 25일 유엔군의 추수감사절 총공세 시에 사단은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에서 정주-선천 방향과 태천-구성 방향으로 나누어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태천-구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순조롭게 진출했으나, 청천강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철수했다. 동쪽의 국군 제1, 제6사단이 적유령산맥에 은폐해 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자, 미 제24사단도 후방이 차단될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공군 11월 7일부로 산악지대로 자취를 감추고 유엔군과의 접촉을 피했다. 이에 유엔군은 주력을 청천강선에 배치하고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24일에 크리스마스 총공세(2차 총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미 제24사단은 13km를 전진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곳곳에 후방이 차단되어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후퇴명령에 의거 후방으로 철수하다가 중공군의 측후방 공격에 의해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는 11월 28일에 철수 중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6면-0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ㅋ-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