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산(李基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53375
  • 전몰일자 : 19520310

공훈사항

이기산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출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보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때인 1951년 3월 초순, 그는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4월 중순, 제2사단은 안동 일대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4월 28일에 전방작전 지역인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군단은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의 5월 총공세를 저지하고, 23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까지 계속된 공격하여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일명 캔사스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엔군사령관은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고의로 지연시키자 이를 촉진하기 위해 군사적인 압력을 가하기로 하고, 예하부대에 공세행동을 명령했다. 제2사단은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1차적으로 8월 2일부터 8일까지, 2차적으로 9월 1일부터 3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다. 그리고 10월 13일부터 김화-금성 진공작전을 실시하여 18일까지 계속된 공격작전에서 금성 서남쪽 직목동 522고지를 탈취했다. 당시 이기산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혁혁한 전공을 수립했다. 이로써 전선으로 북쪽으로 확장시켜 금성분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 및 매복작전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3월 10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그는 전투 중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788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ㅊ-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