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산(李基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5306544
  • 전몰일자 : 19520806

공훈사항

이기산 일등상사는 1928년 11월 10일 경기도 가평군 남우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격렬한 공세를 힘겹게 저지하던 시기인 1950년 9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산 일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에서 중공군의 신정공세에 직면했으나 비교적 접적이 경미하여 38도선 북쪽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전반적인 전선조정에 따라 1월 10일경에는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2월부터 4월까지 삼척-강릉-속사리-남가리-설악산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강릉 지구 전투와 오대산전투를 실시하였다. 이어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 일등상사와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와 5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관령 방어 작전 등으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였다.
이기산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3월 17일 화천으로 이동해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 선에 배치되었다. 그 후 이 일등상사와 장병들은 1952년 6월 16일 전투지경선 조정에 따라 교암산 동측 765고지-690고지-663고지-북한강 동안 어운리 선을 주저항선으로, 575고지, 지형능선, 수도고지 등에 전초를 운용 중이었다.
이기산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새벽 1시에 621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면서 일시 고지 정상을 장악하였으나, 고지 서북쪽의 적으로부터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이 일등상사와 연대병력은 7월 말부터 주저항선을 정비하여 진지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8월 5일 소강상태를 깨고 수도고지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2차례에 걸쳐 진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수도고지의 전초소대가 북한군의 포격에 견디지 못하여 주진지인 663고지로 철수하였다.
이 일등상사와 장병들은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포화에 의한 극심한 피해와 병력의 열세로 수도고지가 북한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기산 일등상사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1952년 8월 6일 꽃다운 청춘을 남겨둔 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산 일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7911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06-ㄹ-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