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봉(李基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704381
  • 전몰일자 : 19501021

공훈사항

이기봉 이등중(군번체계로 볼 때 이등중사)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이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럽던 1950년 2월 초에 춘천에 위치한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 전선에서 기습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연대는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했다. 그러나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이후 7월 한 달 동안 원주-충주-문경-점촌 –함창 일대로 물러서며 지연전을 수행했다.
이후 이기봉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용기동과 신령 북방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조림산 일대의 저항하던 북한군을 격파하고 9월 21일부터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단 장병들은 9월 22일에 함창을 거쳐 9월 29일에는 충주, 10월 1일에는 원주를 확보했다.
제6사단은 10월 4일에 춘천에 도착하였고, 이기봉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10월 5일에 차량편으로 춘천을 출발하여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된 북진작전으로 10월 14일에 원산 북쪽의 덕원을, 17일에 마식령 고개를 넘어 양덕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8일에 성천을 점령하고, 19일에 순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21일 아침에 순천을 출발, 개천에서 희천으로 진격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는 적을 제압하고 희천을 점령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며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봉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3면-1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ㅊ-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