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봉(李紀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301667
  • 전몰일자 : 19510507

공훈사항

이기봉 하사는 1930년 3월 15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1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기봉 하사는 전선에 투입되어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28일 서울 수복작전에 기여하고 9월 말 38도선에 도달하였다. 이후 10월 9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해 19일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0월 23~24일 안주 일대에서 청천강을 도하한 후 25일 운산에 도착하였다.
이기봉 하사와 연대병력은 12월 7일 사리원에서 남천으로 이동하여 구월산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였다. 이후 위천리, 구화리 일대의 축차적인 지연 진지를 점령하여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면서 지역내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철수가 완료되자 14일에는 고량포-적성 일대에 배치되어 주저항선을 편성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면서 그가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한 후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1951년 3월부터 이 하사는 부대 장병들과 함께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이어 4월 21일에는 임진강 북쪽의 대덕산-백학산-강정리를 연하는 선에서 정찰활동에 주력하면서 오금리-마지리 간 주저항선의 방어진지도 강화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문산 북쪽의 고지군에 배치되어 임진강을 방어하였다. 다음날인 4월 22일 해가 지고 저녁 8시를 전후하여 중공 제64군은 일부 병력으로 임진강 북쪽에 진출한 이 하사와 연대병력의 퇴로를 차단한 후 포위공격을 기도하였으나 장병들의 투혼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앞장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봉 하사는 1951년 5월 7일 고봉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봉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438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3-ㅇ-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