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봉(이기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704953
  • 전몰일자 : 19500830

공훈사항

이기봉 하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비산동388번지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7교육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하사 역시 간단한 소총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기봉 하사가 전속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하였다. 유엔군은 8월부로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에 임하였다. 8월 하순 낙동강선으로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 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 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이기봉 하사는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이 하사와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봉 하사는 1950년 8월 30일 대구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봉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3-ㅅ-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