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봉(이기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09509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기봉 일병은 1927년 1월 5일에 경상남도 김해군 이북면 안하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힘겹게 저지하던 1950년 9월 1일,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8군으로 배치되었다가 미 제24사단에 전속되었다.
이기봉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0월 초순, 미 제24사단은 미 제1군단의 조공으로 38도선을 돌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후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도하하여 해주-재령 방향으로 진출하였으며, 10월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했다. 미 제24사단은 10월 20일에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2일까지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그는 10월 24일에 유엔군의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가 시작되면서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을 거쳐 10월 27일에는 정주까지 진격했다. 이때 국군 제2군단이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밀히 숨어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무너지자, 미 제24사단은 측방이 차단되는 위험을 느끼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유엔군은 당시 중공군의 참전규모를 과소평가한 상황에서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했다. 미 제24사단은 선천까지 접적 없이 진출했으나, 인접 국군부대가 붕괴됨으로써 후방이 차단될 것을 우려하여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12월 3일에 평양방어선을 점령했다가 12월 6일에 이마저 포기하고 철수하여 12월 13일에는 38도선 상의 김화-포천-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다.
이기봉 일병은 방어진지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주공을 서울로 지향하고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펼쳤다.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조직적으로 철수하며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었으나, 역부족으로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김화 일대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포천-의정부 축선으로 철수하며 지연전을 실시했다. 그는 1월 3일 전투에서 후방을 차단한 적과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