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복(李基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0384
  • 전몰일자 : 19520203

공훈사항

이기복 일병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5월 초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복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이기복 일병과 장병들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병진공격을 개시하였다. 다음날(21일)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문산천 북쪽의 가좌현 부근에 배치된 적의 박격포와 중화기 사격을 받아 문산천 도하에 실패하였다. 이날따라 종일 내린 비는 그들의 기동을 제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경과할수록 문산천의 수량이 증가하여 도섭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기복 일병과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에게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 끝에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1952년 2월에 접어들어 여전히 대규모 공격작전을 보류하고 계속 정찰과 기습을 통하여 북한군과 접촉을 유지하며 방어진지를 더욱 강화하였고, 다만 아군의 경계선 및 주저항선의 요부에서 소규모 공방이 전투 초점이 될 뿐이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북한군을 물리치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 일병은 1952년 2월 3일 고랑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중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1판-7면-1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4-ㅎ-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