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상(李基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28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기복 일병은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5월경 육군잠정포병사령부에 입대했다.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년 11월 20일 제2,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동년 12월 15일 육군잠정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 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편되었다. 이 일병은 동 학교 제2교도(포병)대대 조교로 배치되어 포병 장병 육성에 진력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교도대대는 저녁 10시에 “제2사단을 직접 지원하라”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새벽 1시부로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제5연대)은 26일 새벽에 축석령 지역에 투입되었고, 제2포병대대는 제2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26일 아침에 의정부 북방 상금오로 이동했다. 대대는 포를 방열하고 자일동 부근의 적을 향하여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105mm 야포의 화력도 북한군 T-34 전차의 진출을 막지 못했다.
대대는 제6번 포를 끌고 나와 포를 방열하고 적 전차가 50m 전방까지 다가오자 제1탄을 궤도에 명중시켰다. 적 전차가 비틀거리며 도로변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본 포반원이 제2탄을 장전하던 중, 적 전차에 의한 대응 사격으로 대대장 이하 포반원 전원이 전사했다. 한편 공격 진로가 막힌 적 전차의 전진이 한동안 지체되자 제2포병대대는 전 화력을 집중하여 사격했다. 이에 북한군은 위협을 느껴 다시 축석령 북쪽으로 물러났다. 이후 적은 보전 협동공격으로 집중 공격을 가했고, 제5연대와 제2포병대대는 창동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내 손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적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9-ㅍ-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