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병(李基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K1131162
  • 전몰일자 : 19511208

공훈사항

이기병 일등중사는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등중사는 1950년 9월경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한 후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3월 5일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사단은 4월 25일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이어서 중공군 5월 공세 때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철수를 완료한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고대산을 확보했다. 이어서 제9사단은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 동 고지를 점령했다.
부대 정비를 마친 제9사단은 10월 5일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하다가 11월 3일부터 18일까지 실시 된 395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백병전을 전개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동 고지를 확보하고 계속되는 적의 역습을 격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일등중사는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12월 8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병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9-ㅈ-00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