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민(李祺旻)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131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이기민 일병은 1929년 5월 10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50년 2월 초에 수도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유사시 전방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기민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발발하자, 38도선에 배치되어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인 2.36인치 로켓포는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38도선의 방어선이 대부분 무너지고 말았다.
이기민 일병과 장병들은 모든 부대를 서울방어에 투입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의정부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북한군의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하였다. 이어 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과 격돌하였다.
이기민 일병과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사단은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한 후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동강 남안으로 이동하여 3일 야간까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일부터 시작해서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기민 일병은 1950년 8월 10일 죽장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02-ㅅ-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