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문(李起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4901
  • 전몰일자 : 19521009

공훈사항

이기문 일병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수도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의 기계 축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제18연대는 8월 3일부터 낙동강방어선의 청송, 의성, 기계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위기의 조국을 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단은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청송-춘양-영월-평창 방향으로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연대는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10월 10일 원산을,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한 후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30일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6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서쪽의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주 방어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과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지속해서 전개했다. 그러던 중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대규모 공격을 가해왔다. 이 고지에 배치된 제22연대가 고지를 탈취당하자 연대는 역습을 실시했고, 10월 2일까지 백병전을 전개하며 치열한 교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적은 소규모 공격을 계속했고, 이 일병은 10월 9일 전투에서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4면-2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ㅇ-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