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문(李起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36002
  • 전몰일자 : 19520108

공훈사항

이기문 일병은 1925년 10월 1일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4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문 일병은 서울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1951년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기문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12월 28부터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어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중이었다.
이기문 일병과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파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문 일병은 1952년 1월 8일 두매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문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5099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4-ㅅ-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