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문(李起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747
  • 전몰일자 : 19520101

공훈사항

이기문 일병은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면에서 태어났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한 1950년 12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문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 제11사단은 사단지휘소를 남원에 설치하고,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각각 분산 배치되어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어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실시하여 공비들이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은 소멸되었다. 당시 이기문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지리산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에서 작전활동을 실시했다.
제11사단은 공비소탕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초에는 거진-건봉령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기문 일병이 소속된 수색중대는 전투시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 주요시설을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전선은 쌍방 간의 휴전협상 진행으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9연대는 11월 15일부로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459고지)와 351고지를 포함한 동해안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지역을 인수하여 방어정면이 그만큼 넓어져 부담이 커졌다. 그러던 중 북한군이 11월 18일부터 월비산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에 제9연대는 19일에 공격하여 다시 탈취했다. 이후 11월 24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으나, 결국에 적에게 빼앗겼다. 반면 351고지를 확보하여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이기문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952년 1월 1일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던 중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추격을 받았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퇴각할 때에 엄호조를 하며 적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7면-18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ㅅ-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