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무(李起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206082
  • 전몰일자 : 19500826

공훈사항

이기무 일병은 1930년 4월 13일에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기록에 의하면 1949년 9월 7일에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2연대는 옹진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가 11월 15일에 복귀하였다. 이후 1950년 6월 12일에 홍천으로 이동한 후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제8연대(수도경비사로 예속)와 교대하여 전쟁 발발 불과 5일 전인 6월 20일에 배치를 완료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후 경계지역전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행동으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연대 장병들은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으로 철수하여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 방어를 포기하고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7월말까지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기무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명령에 의거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 장병들은 8월 12일까지 잘 지탱했으나, 이날 저녁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의 감제고지인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지역을 점령했다. 이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한 조치이며, 더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이었다. 북한군은 8월 12일부터 전면적인 대공세(일명 ‘8월 공세’)를 실시했다.
이기무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여명공격을 받고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적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후 그는 8월 26일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연대의 주저항선이 붕괴될 때에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8판-5면-15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ㄱ-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