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만(李基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9656
  • 전몰일자 : 19530223

공훈사항

이기만 하사는 1931년 4월 15일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2년 4월 11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개최되었고,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진지보강을 하면서 수색정찰,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공산군 측의 개성폭격설로 인해 8월 하순 일시 중단되었던 휴전회담이 1951년 10월 25일 재개되었다. 공산군 측은 회담의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시도로 전 전선에 걸쳐 국부적인 제한공격을 취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에서 격렬한 전투 양상으로 급변했다.
사단은 1952년 2월 중순 1,090고지 부근에서 적과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른 후 전선의 교착 속에서 소규모 병력으로서 수색 및 정찰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10월 6일 중공군 제202사단이 1,090고지에 대해 공격을 가했고, 사단은 14일까지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제3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사단은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한 후 양구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병행했다.
사단은 11월 하순 다시 전선에 투입되었고, 이후 큰 전투 없이 수색정찰, 매복, 적진 교란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953년 2월 23일 적진 교란작전 중에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만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ㅂ-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