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만(이기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101375
  • 전몰일자 : 19500806

공훈사항

이기만 이등중사는 출생 기록이 없다. 그는 광복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 6월 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 특무대에 배치되었다.(*전사자 명부에 소속이 육군직할 특별부대는 당시 없는 부대로 육군직할 특무대로 조정)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국군은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일시 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는 전쟁초기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국군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 3개 혼성사단이 중심이 되어 전차 1개 사단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군단 소속 3개 사단과 한강을 잇는 선에서 치른 방어전투이다.
이후 이기만 이등중사와 부대원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선에 이르렀다. 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선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을 전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다.
이기만 이등중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다. 이기만 이등중사는 1950년 8월 6일 경상북도 영천 북쪽 보현산 지역에서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북한군 제15사단의 첩보 수집을 하다가 적 경계병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만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7039 국)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0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3-ㅊ-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