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만(李基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05508
  • 전몰일자 : 19510825

공훈사항

이기만 일병은 1927년 1월 25일 경기도 인천시 수안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3월 30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만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평창 일대에서 대관령 방향으로 조심스러운 반격작전을 계속해 설악산으로 진출하였다. 중공군은 1951년 4월 22일 서울을 목표로 제5차 공세를 감행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6월 4일 짙게 낀 안개로 관측이 불가한 틈을 이용하여 적은 강력한 박격포 사격의 엄호하에 이 일병과 연대병력의 전초진지인 산두곡산과 원봉 전장의 1209고지를 공격해 왔으나 치열한 격전을 펼쳐 격퇴시켰다.
1951년 8월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고지쟁탈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수차례 반복되고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이기만 일병과 연대병력은 8월 18일에 시작된 향로봉 북쪽의 주요 고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924고지와 884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13사단과 제45사단과 대치를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55밀리 야포 사격에도 견딜 만큼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해 놓고 저항하는 북한군을 물리치기 위해 돌진하여 수류탄을 투하하여 진지를 탈환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하였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죽음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오로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기만 일병은 1951년 8월 25일 향로봉 북방고지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만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05-ㄱ-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