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록(李己祿)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17501
  • 전몰일자 : 19521006

공훈사항

이기록 상병은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2월 13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과정을 마친 후 1952년 4월 30일 해병대 제1연대 제1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황은 공산군과 유엔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이 시기 국군과 유엔군은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감행하여 횡성-홍천-춘천-양구-화천-양양-간성-고성을 잇는 선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제1대대는 제1연대의 예속부대로서 장단·사천강지구에 투입되어 전초진지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장단·사천강지구는 경기도 문산과 파주에 접해 있고 서울과 이어져 있어서 서울의 관문인 개성-문산 축선을 지키는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해병대 제1연대는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4월부터 적진에 대한 정찰과 기습작전을 실시했다. 우기인 7월과 8월은 사천강 수위의 변동이 잦아서 적진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낮았던 수위가 복귀할 때에는 수심이 2m를 훨씬 넘는 경우가 많아 화기와 장비를 가지고 도하작전을 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리하여 아군은 주로 적의 침투에 대비한 매복작전을 실시했으며, 적진에 대한 기습공격은 사천강의 수위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우기가 끝나고 9월이 되자 사천강을 가운데 둔 아군과 적은 전초진지를 보강하며 화력지원하에 연일 기습과 정찰을 실시했다. 해병대 제1연대는 정찰을 통해 적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면서 기상과 수위에 따라 방어작전과 적에 대한 기습공격을 계속 반복하였다.
10월에 접어들자 적은 아군의 전초진지를 탈취하고자 10월 2일 포병사격 지원하에 약 2개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리하여 피·아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수차례나 반복되었다. 이 상병은 10월 6일 36전초진지에 대한 역습을 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록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9판-4면-0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ㅎ-07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