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락(李基洛)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752785
  • 전몰일자 : 19511119

공훈사항

이기락 이병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5월 공세'로 중동부 전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는 위기가 도래했을 때인 1951년 5월 중순, 현지에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락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6월 중순, 사단은 중서부전선의 육단리에서 적근산을 잇는 선(일명 캔사스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공사와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한편 공산군은 이 시기를 이용하여 전력증강에만 열중하고 휴전협상에는 소극적이었다. 이에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회담의 조기타결을 강요하기 위해 군사적인 압력을 가하기로 결심하고, 예하부대에 공격명령을 하달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육단리-적근산 방어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1차적으로 8월 2일에 공격하여 8일에 탈취했고, 중공군의 공격으로 시작된 2차전에서는 9월 1일부터 3일까지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로써 1951년 10월 미 제9군단의 중앙 사단으로서 김화 동쪽 송동으로부터 바조봉-승암고개-적근산 서측 두목리에 이르는 일련의 능선을 연해 형성된 주저항선을 방어했다. 그리고 제2사단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사단의 김화-금성 진공작전계획에 의거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제1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전차중대를 배속 받아 적근산 북쪽 기슭에서 금성을 목표로 돌진했다. 이후 18일까지 계속된 공격작전 끝에 금성 서남쪽 직목동 522고지를 탈취하고 작전을 종료했다. 이로써 전선으로 북쪽으로 확장시켜 금성분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어 이기락 이병이 소속된 부대는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정찰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는 11월 19일에 소대원들과 함께 방어진지 후방지역에서 수색작전을 하던 중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멸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락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9-ㅅ-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