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득(李己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601
  • 전몰일자 : 19500710

공훈사항

이기득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10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기득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무렵 사단은 함창에서 해체된 제2사단 제5연대와 제20연대를 제11․제12연대에 각각 통합 재편성한 후 제13연대를 함창 서북에 배치하여 제6사단 좌일선과 연계하고, 즉각 제11·제12연대로 반격준비에 들어갔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 장병들은 영강 동쪽으로 북한군을 차단포위하기 위해 19일 미명부터 즉각 반격에 나서 오정산 일대를 탈환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위협하였다. 북한군 제1사단과 제13사단은 퇴로 차단의 위협을 받아 일시에 와해 되기 시작하였다.
이기득 일병은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에 불과하였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이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득 일병은 1950년 7월 10일 음성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0-ㅅ-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