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득(李琪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1685
  • 전몰일자 : 19500812

공훈사항

이기득 일병은 1928년 10월 28일에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져 가던 1950년 3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부족한 장비와 병력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따라서 6월 25일 수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한 데 이어 오후에는 제18연대(-1)마저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해 가평지구로 투입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시켜 창동 지역에 배치했다.
이기득 일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철수와 방어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일시공격으로 전환해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했으나, 곧 이은 적의 대규모 반격으로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는 전쟁초기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국군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 3개 혼성사단이 중심이 되어 전차 1개 사단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군단 소속 3개 사단과 한강을 잇는 선에서 치른 방어전투이다.
그 후 이기득 일병은 국군 제1사단에 편입되어 중서부전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며 후퇴를 거듭했다. 8월 초에는 낙동리 일대로 강을 건너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했다. 제1사단은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인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다부동(現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배치되어 8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북한군의 증강된 3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하며 대구를 고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득 일병은 8월 12일 다부동 지역으로 철수 중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4판-3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ㅎ-1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