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起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59396
  • 전몰일자 : 19530630

공훈사항

이기동 일등중사는 충청북도 괴산군 장정면에서 1926년 8월 31일에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2년 1월 30일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적군은 6·25전쟁 휴전을 앞두어 철원평야를 빼앗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지를 공격해왔고, 국군은 고지사수를 위해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당시 북한군은 지형조건 상 아군의 고지를 감제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1951년 연말부터 1952년 2월 초까지 백야전사 제3기 작전에 참가해 1952년 1월 4일~31일간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 일대에 잠복중인 공비를 소탕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하고 있었고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북한군은 1953년 5월 13일 막강한 화력으로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고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는 국군의 전초진지인 마제형 진지를 점령하여 확보함과 동시에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한때 제8사단의 진지가 피탈되었지만 1953년 5월 18일 포격을 시작으로 역습을 개시해 적군의 전초기지를 대다수 파괴하며 북한군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중공군은 1953년 6월 12일 국군의 수도고지 정면 714고지, 전 주저항선에 걸쳐 포병지원과 함께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부터 중공군의 6월 공세로 6월 18일 백병전을 전개하며 북한군을 완전히 격퇴하고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으로부터 약 1km 후방에 아이슬란드 선에 신 방어선을 구축했다.
제21연대는 중공군 일부를 물리쳤으나 주저항선의 전반이 붕괴하여 중공군은 이틀 만에 수도고지를 점령했다. 이 일등중사는 이러한 전투 도중 중공군의 포격으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1953년 6월 30일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1묘역-103판-307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5-ㅍ-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