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基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45350
  • 전몰일자 : 19511226

공훈사항

이기동 일병은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9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고, 제7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양구 백석산 남방에서 적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엔군과 중공군은 5월 공세 이후 군사작전만으로는 전쟁을 종결짓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양측이 최초로 휴전회담을 열었고, 이후 전투는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이런 전황 속에서 미 제8군은 적에게 혼란을 주고 방어선의 취약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제한된 목표에 대한 공격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가장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사단은 8, 9월간 백석산을 탈취하기 위해 그 남쪽에 있는 917고지, 883고지, 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교전을 거듭했다.
이어 사단은 미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연대는 백석산 남방의 1,016고지를 점령했다. 연대는 26일 백석산 주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캔자스선 남쪽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잇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연대는 28일까지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분전하다 적탄에 맞아 12월 2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3-ㅌ-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