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基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644
  • 전몰일자 : 19501008

공훈사항

이기동 일병은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8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기동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가 중공군의 2차례 기습적인 공격으로 철수 중에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와 같이 사단은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면서 아군은 6명 전사하였으나 적 936명을 사살하고 126명을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면서 게릴라들을 소탕했고, 11월 27일부터 육군본부 통제 하에 철의 삼각지대에서 북한군 패잔병을 소탕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2일 잔적의 거점인 춘천을 목표로 공격하여 임무를 달성하고 북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화천 부근의 잔적을 소탕했다.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사단은 12월 5일 경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전방연대의 후방을 차단했다.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가 되었다. 이기동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북한군 제10사단 병력들이 제천-단양-안동까지 침투하자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를 전환했다.
이후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반격으로 전환하여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려고 했다. 이기동 일병은 문막 일대 방어진지에서 사단 사령부와 예하부대와 통신망을 확인하다가 1951년 1월 8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6면-2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ㅌ-09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