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起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01893
  • 전몰일자 : 19530613

공훈사항

이기동 일등중사는 1933년 8월 24일에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現 안성시 공도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1년 3월 13일 입대하여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동 일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가평-횡성-여주-영주-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막아내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1951년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6월 4일 한계리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끝에 6월 17일 목표인 서화리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했다. 그 후 美 제10군단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고, 이에 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하여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제27·2·13사단을 맞이하여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으나,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1952년 1월 23일 부로 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의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 방어에 임했다. 7월 10일 적 제9사단은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으로 아군은 적에게 351고지를 탈취 당했으나, 제27연대와 이기동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고지를 재탈환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제36연대를 좌, 제27연대를 우, 제35연대를 예비로 편성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했다.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여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으나, 중공군의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 공세로 6월 15일부로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골-널우골을 잇는 선으로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기동 일등중사는 예비연대 집결지인 금화 일대 감우리로 철수 중 6월 13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장병1묘역-101판-227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ㅊ-00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