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基東)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7663
  • 전몰일자 : 19520923

공훈사항

이기동 하사는 1929년 3월 13일에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봉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1년 7월 10일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동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렸고, 11월 27일 회담에서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합의했다. 이에 양측은 대규모작전을 자제했고, 전쟁은 휴전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작전과 전선 개선, 휴전 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제5사단은 8월 말부터 시행한 양구 북쪽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 시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이 전선을 1951년 10월 20일에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하여 1952년 1월 12일까지 군 예비로서 양양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전념을 하면서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했다. 그 이후 사단은 1월 13일 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제5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사단의 주저항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제35연대, 이기동 하사가 소속된 제27연대를 예비로 배치했다. 당시에 사단 전초진지는 예비연대에서 투입해서 작전을 실시했으나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 당했으나, 제27연대와 제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기동 하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351고지를 방어하다가 1952년 9월 23일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ㄲ-08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