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起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2702207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기동 이등상사는 1929년 6월 1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북한 유격대의 습격, 파괴 활동 등으로 사회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시기에,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8년 8월 14일 제4여단 제15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제15연대가 11월 25일 제5여단으로 예속 변경되면서 건군초기의 혼란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작전에 참가했다.
제5여단은 1949년 5월 12일 부로 제3・15・20연대를 예하부대로 제5사단으로 승격하였으며, 사단은 1950년 1월 25일 부로 제3연대가 예속 해제되어 제15・20연대로 6·25전쟁 초기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전쟁초기에 입은 손실로 7월 5일 국군의 부대 재편성할 때에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대구에서 재창설하였다. 이기동 이등상사는 사단이 해체되어 타부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재창설되면서 사단 예하 제27연대로 재배치되었다.
당시 제5사단은 국군 및 유엔군의 북진작전으로 영남지역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였으며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 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1951년 초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문막, 단양, 제천 일대에서 격전을 치루면서 공격과 철수를 반복했다.
그 이후, 사단은 1951년 4월 7일에 다시 반격작전을 실시하여 소양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으며, 4월 10일부터 인제지역을 공격하여 7일 만인 4월 17일에 인제를 점령하고, 19일에 원통 북쪽의 481고지와 봉화봉, 586고지를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2일 자정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4월 24일에 인제를 적에게 빼앗겼다가 4월 25일에 재탈환 했으며, 5월 9일부터 19일까지 한석산 서측에서 소양강 남쪽의 부평리-청구리 일대를 목표로 제27연대를 주공연대로 하여 공격하는 홍천 북방지역 전투를 시행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동 이등상사는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적 진지를 돌파하다 1951년 5월 17일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이등상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2판-5면-0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ㅎ-09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