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이기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6806427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기동 하사는 출생 관련 기록이 없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0월경 제3사단 제22연대에 입대했다. 그가 입대할 무렵 북한은 남한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고 장차 제2전선을 형성할 목적으로 유격대를 남파하고 있었다.
유격대는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까지 10차에 걸쳐 남파되었으며, 그중 일부가 경북일대까지 침투하여 일월산, 보현산 등지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습격, 파괴활동을 일삼았다. 제22연대는 토벌부대로 투입되었고, 이 하사는 1950년 3월까지 이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22연대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5일 오후 제23연대의 대전차포중대 및 2개의 중화기중대를 대동하고 대구에서 이동하여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27일 연대(-)는 봉일천 지구의 제1사단을 증원하고, 이 하사가 소속된 제3대대는 김포로 출동하여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그날 저녁 무렵 김포읍에 집결한 대대는 김포지구사의 명령에 따라 김포 서북방의 운유산 동쪽 72고지 일대에 진지를 점령했다. 6월 28일 날이 밝자 북한군 제6사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은 어선을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대대 우전방의 63고지에 배치되어 있던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기병 제7중대를 격파하고, 이어 대대에 공격을 가해옴에 따라 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2-ㅌ-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