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基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307657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이기동 이등중사는 1930년 5월 3일 경기도 김포군 김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2월 15일 제7사단 제3연대에 입대했다. 연대는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제7사단에 배속되어 포천 후방의 송우리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연대 장병들은 6월 25일 송우리전투와 27일 창동전투에서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와 적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적 전차를 막지 못해 돌파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28일 한강교를 건너 과천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29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역삼리, 과천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2일 연대는 이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하고, 군포 근처의 348고지에 배치되어 아군 수도경비사령부와 제7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 수원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 제7사단을 해체했고, 이때 제3연대도 해체되어 제18연대에 편입되었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전투,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전투, 그리고 14일~16일 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7월 23일부터 연대는 영주,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8월 6일까지 지연했다. 그런데 북한군 제12사단이 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산악지대를 통과해 8월 10일에는 영일군 기계까지 침투함으로써 제1군단의 방어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에 제1군단은 8월 10일 제8사단에 제18연대를 일시적으로 배속했고, 연대는 사단의 역습에 가담하여 8월 14일 적의 후방을 차단하고 뒤에서 공격을 가하여 18일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월 2일 경주를 목표로 일제히 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기계 서측방의 인비동-봉계동의 고지군에 배치된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까지 치르는 혈전을 하면서 적을 저지했으나, 인접 제8사단 지역의 운주산 방향으로 침투한 적이 후방을 위협하자 경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9월 2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4-ㄴ-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