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基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9900858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이기동 이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게 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0년 7월 13일 수도경비사령부에 입대하여 제18연대로 배치되었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전투,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전투, 그리고 14일~16일 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7월 23일부터 연대는 영주,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지연했다.
그러다 사단은 8월 5일 적의 기습공격을 받고 의성으로 철수했다. 이 틈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12사단이 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산악지대를 통과해 8월 10일에는 영일군 기계까지 침투함으로써 제1군단의 방어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에 제1군단은 8월 10일 제8사단에 제18연대를 배속하여 역습하도록 하고, 제17연대와 수도사단을 투입하여 적을 포위 공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제8사단에 일시적으로 배속되어 사단의 역습에 가담하여 장림리를 점령하고, 이어 8월 14일 적의 후방을 차단하고 뒤에서 공격을 가하여 18일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비학산 방향으로 패퇴시켰다. 연대는 적을 추격하여 비학산 점령을 시도했다. 그러나 급속한 보충과 재편성을 마친 북한군 제12사단의 완강한 저항에 밀려 실패하고, 기계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8월 24일 북한군 제12사단은 기습적인 야간공격을 감행했고, 장병들은 격전을 치르며 적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으나, 27일 결국 기계를 내주고 말았다.
북한군 제12사단은 9월 2일 경주를 목표로 일제히 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기계 서측방의 인비동-봉계동의 고지군에 배치된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까지 치르는 혈전을 하면서 적을 저지했으나, 인접 제8사단 지역의 운주산 방향으로 침투한 적이 후방을 위협하자 경주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진지를 지켜내며 용감히 싸우다 9월 2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4-ㄷ-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