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동(李起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2423
  • 전몰일자 : 19530203

공훈사항

이기동 이등중사는 1929년 4월 20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2월 초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교육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동 이등중사는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에 투입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중공군 제63군 예하 제188사단과 대치 중이었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월 3일 오전 8시 야포 18문과 155mm 야포 6문, 그리고 4.2″ 박격포 8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두매리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곧이어 전폭기 4대가 측방 엄호포격을 실시하며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탈환작전은 부진하였고 계속된 돌격로를 개척하면서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중공군을 격멸하고 122고지와 148고지를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고지를 탈환한 후 곧 이은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다시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이기동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10월 1일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7일 텟시고지에 대하여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북한군으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아 공격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11월에 접어들어 사단은 포로획득과 북한군 전초기지 파괴 작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소노리의 상실로 주저항선이 북한군에게 위협받고 있었으므로 기필코 이를 탈환하고자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을 작전에 투입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고,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도 계속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동 이등중사는 1953년 2월 3일 적진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동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465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5-ㅇ-02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