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돈(이기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0625
  • 전몰일자 : 19501220

공훈사항

이기돈 일병은 경상남도 통영군 거릉면 소량리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8군사령부로 배치되었다가 미 본토로부터 증원되는 미 제3사단으로 전속되었다.
미 제3사단은 1950년 8월 20일에 예하 제7, 제15연대와 함께 부대를 일본으로 긴급 전개함과 동시에 푸에르토리코에 주둔한 제65연대를 배속 받아 11월 10일에 완전 편성했다. 그러나 기존의 연대는 병력이 많이 부족하여 한국군에서 지원한 카투사(KATUSA) 병으로 보충하여 6·25전쟁에 참전했다.
미 제3사단은 11월 17일에 원산으로 상륙 후 서부전선의 미 제8군과 접촉하여 미 제10군단의 좌측을 보호하고, 미 해병 제1사단을 지원하며 원산의 항만과 비행장을 방호하며 잔류 게릴라를 소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후 11월 29일에 이기돈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흥남으로 이동하여 장진호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포위망을 돌파하는 미 해병 제1사단의 철수를 엄호했다.
미 제3사단은 이후 12월 14일에 수도사단과 함께 혜산진에서 철수한 미 제7사단의 일부 병력 지원을 받아 흥남-함흥 외곽 교두보방어선을 점령하여 미 제10군단 예하 병력들과 민간인들의 흥남철수 작전을 엄호했다. 12월 16일에 수도사단이 철수를 위해 수송선에 승선함으로서 자연적으로 미 제3사단과 미 제7사단이 남아 교두보 방어선을 제1주저항선으로 좁혔고, 12월 18일에는 미 제7사단이 승선함으로서 제2주저항선으로 좁혔다. 12월 20일에는 미 제7사단이 함흥항을 출발하여 미 제3사단만이 마지막으로 남아 제3주저항선을 점령하여 방어했다.
이기돈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12월 20일부터 해군의 함포사격과 공군의 전략폭격기 강력한 화력지원 하에 제3주저항선에서 대규모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