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덕(李基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800400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이기덕 이등중사는 1928년 4월 5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등중사는 1950년 10월경 입대 후 제9사단 병참 중대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이 서울에서 10월 25일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들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갑작스런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이 청천강 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제9사단은 12월 19일부로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해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어서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상급부대명에 의거해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이하여 사단 서측방에 대한 적의 공격을 치열한 전투 끝에 막아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1년 2월 21일 적과의 전투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덕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7-ㄱ-08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