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덕(이기덕)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201027
  • 전몰일자 : 19501125

공훈사항

이기덕 일등상사는 1933년 9월 11일에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면 오관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47년 5월 28일에 대전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연대는 1949년 6월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 예하부대로서 옹진지구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20일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이기덕 일등상사는 연대가 홍천으로 이동할 때, 제6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이후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6월 30일부터 원주를 거쳐 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고 8월과 9월에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이기덕 일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보병부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신녕에서 출발하여 함창-문경-원주-춘천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했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추격하여 성천을 점령했다. 이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그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부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여 제7연대의 기동 속도를 증가시켰다.
제7연대 장병들은 희천에서 부대정비 후 10월 24일에 유엔군 총공세작전 시에 온정리를 거쳐 초산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26일은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 중이던 중공군들에 의해 사단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되었다. 이에 이기덕 일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소대도 130km가 넘는 험준한 산길을 따라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11월 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국군 제2군단은 11월 24일에 개시된 유엔군의 2차 총공세에 참가했으나, 이번에도 공격 2일 차인 25일 야간부터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아군의 후방이 차단당했다. 이제 이기덕 일등상사는 장애물 개척보다 포위된 차단선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소대원을 인솔하여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덕 일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8판-3면-07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ㅋ-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