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남(李基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82750
  • 전몰일자 : 19511202

공훈사항

이기남 하사는 1930년 10월 10일에 경상남도 진양군 반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했던 1950년 12월 22일,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만을 수료하고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기남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9월 중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한 상태에서 반격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제6사단은 2월 초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후 제6사단은 ‘중공군 2월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용문산까지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공세적인 방어로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5월 24일부터 춘천 서북방으로 진출하여 28일에는 화천저수지 이남의 선까지, 6월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철의 삼각지대의 우반부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그동안 이기남 하사가 소속된 수색중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들락거리며 적정을 살펴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및 보급소 등을 습격하여 후방을 교란했다.
제6사단은 1951년 가을이 되면서 유엔군 작전방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해 공세작전을 펼쳤다. 먼저 주방어선 전방의 819고지를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공격하여 탈취했다. 또한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된 공격으로 교암산-송설리-송동리 선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되어 수색중대는 적정 파악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이기남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가 12월 2일에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파악하던 중에 적 부대와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남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4-ㅅ-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