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남(李基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300869
  • 전몰일자 : 19510921

공훈사항

이기남 이등중사는 1930년 7월 8일에 전라남도 광산군 서면(現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6·25전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1950년 7월 하순경 타부대에 현지 입대하여 6·25전쟁 초기전투에 투입되어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가, 1950년 10월 8일 제5사단이 재창설될 무렵 회복되어 제35연대에 재배치되었다.
이기남 이등중사가 제5사단에 재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고, 사단은 1950년 10월 8일 재창설 후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11월 22일까지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면서 17번 국도상의 춘천 지역에 배치되어 평양-서울 간 도로의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 후 12월 13일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춘천-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고,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 하순 경 사단이 배속된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사단은 8월 31일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와 서희령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최초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하였으며 9월 5일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였으나 진전이 없자 다음날 제35연대 각 대대로 제27연대를 증원하여 9월 9일에 1,211고지를 최초 점령하였으나 적 역습으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가칠봉 부근의 진지를 강화하다가 9월 17일에 제35연대로 주공을 전환하여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지금까지 2개 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돌파구를 열지 못하자 사단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하여 부대 재배치를 단행했으며, 제35연대는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1,211고지를 계속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기남 이등중사는 1951년 9월 21일 소대원을 통제하면서 1,211고지를 공격하다가 적의 흉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남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3-ㄱ-08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