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남(李起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732278
  • 전몰일자 : 19510805

공훈사항

이기남 이병은 1926년 1월 18일 경기도 수원시 교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6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이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기남 이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 쌍방은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6월 말 이 이병은 연대병력과 함께 동거리-내화산을 목표로 원당리 일대의 정찰기지를 확보 중이었으며 삼송리-봉일천-동거리를 연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어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이 부진하였다. 이때 적은 삼송리-봉일천 도로를 통제할 수 있는 관산리 일대의 유리한 지형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박격포 사격으로 공격을 극력 저지하였다.
7월에 접어들어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자체 정찰 활동과 적군의 주요 지역에 대한 탐색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심한 장마로 인하여 기상이 악화되고 시계가 제한되어 통신이 곤란할 뿐만 아니라 도로가 침수되어 부대기동이 어려웠고 포병사격의 유도는 물론 항폭지원 역시 곤란하였다. 이로인해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이병은 전투 경험이 부족한 신병에 불과하였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기남 이병은 1951년 8월 5일 가재동 부근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도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남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3-ㄴ-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