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남(李基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102818
  • 전몰일자 : 19500702

공훈사항

이기남 이등중사는 1926년 9월 16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광복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12월 초순경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제1연대로 입대하여 국내소요사건과 38도선의 충돌사건 등에 투입되어 복무하다가 1949년 12월 초순경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인 호림부대로 전속되었다. 호림부대는 북한 치하에서 탈출 월남한 민간인 중에서 선발한 367명을 기간으로 하여 1949년 2월 25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으로 창설되었다.
同 부대는 창설 직후인 2월 28일 대구로 이동했다가 5월 2일 경기도 수색으로 이동하여 수색학교에서 유격 교육을 이수하고, 시흥(제17연대 위치)으로 이동하여 호국군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8월 13일 영등포학원으로 재편성되면서 전원이 현역으로 편입되었고, 남한으로 침투한 북한 유격대들을 소탕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기남 이등중사가 소속된 영등포학원은 제3사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축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한편, 제3사단은 동해안 축선을 담당하면서 1950년 6월 29일 울진 남쪽의 왕피천으로 출동하여 7월 1일 새벽에 울진 시가지를 공격, 경미한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를 탈환한 후 동해 가도 상의 138고지와 남대천 및 왕피천 일대에 부대를 배치했다.
북한군 특수전부대인 제766부대는 주력을 동해 가도로 기동시키고, 일부 병력을 산간지역으로 우회시켜 사단을 협공했다. 사단 장병들은 138고지에서 왕피천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7월 2일 영해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남 이등중사와 부대원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적과 싸우고 또 싸웠다.
이기남 이등중사는 또 다시 공산군들에게 자유와 조국을 뺏길 수 없다는 굳은 신념으로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방어진지의 최전방에서, 또 돌격대열의 최선두에서 누구보다 용감히 싸웠으나, 7월 2일 전투에서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남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4판-7면-1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ㅇ-03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